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고흥 여행기 - 나도 몰랐던 전라남도 끝자락에서 찾은 인생의 쉼표
    한국여행의 추억 2025. 10. 26. 04:56

     

    1. 고흥, 지도 속 끝자락에서 발견한 조용한 쉼

    전라남도 고흥. 이 이름을 들었을 때, 누군가는 바다를 떠올릴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낯설고 외진 곳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고흥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저 ‘전라도 어딘가에 있는 작은 도시’ 정도의 이미지였고, 여행지로서의 매력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던 어느 날, 우연히 검색창에 “사람 없는 국내 여행지”를 입력했고, 그렇게 고흥이 내게 다가왔다.
    어떤 목적지도 없었다. 유명한 맛집이나 핫플레이스도 없었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끌렸다.
    ‘고흥이라는 이름 자체가 낯설기에, 오히려 진짜 여행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기대.
    이 글은 그런 기대 속에서 시작된, 아주 조용하고 사적인 여행의 기록이다.

     


    2. 길 위에서 비로소 나를 되돌아보다

    서울에서 고흥까지는 버스로 약 5시간이 걸린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나 KTX를 선호하지만, 나는 일부러 고속버스를 택했다.
    장거리 이동의 불편함보다, 창밖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버스는 점점 도시의 빌딩 대신 초록 논과 파란 바다를 스쳐 지나갔다.
    터미널에 도착하자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바다 냄새가 났고, 사람들의 걸음이 느렸다.
    택시를 타고 첫 번째 목적지인 ‘남열해돋이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에 표시되지 않는 좁은 길을 따라 도착한 그곳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파도 소리, 철썩이는 바람, 그리고 내 발자국뿐인 모래사장.
    그 순간, ‘도착했다’는 감각이 뚜렷하게 가슴에 새겨졌다.

     

    고흥 여행기


    3. 고흥우주센터에서 만난 의외의 영감

    여행의 중심에는 뜻밖에도 ‘우주’가 있었다.
    고흥에는 국립고흥우주전시관이라는 아주 독특한 공간이 있다.
    처음엔 단순한 박물관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가 보니 상상 이상이었다.

    전시관은 단순히 로켓이나 인공위성 모형을 진열한 곳이 아니었다.
    우주 개발의 역사, 대한민국의 발사체 기술, 나로호 발사 이야기가 상세하게 담겨 있었다.
    특히, 전시물 일부는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흥미로웠다.
    고흥이 왜 이토록 조용한 곳에 우주센터를 세웠는지,
    그 속에 담긴 기술적·지리적 이유를 알게 되는 순간, 이 공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게 되었다.

    여행이란 결국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일이다.
    고흥은 나에게 ‘우주’를 보여주며, 세상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4. 현지인 식당에서 만난 진짜 한 끼

    여행지에서의 식사는 그 지역의 삶을 들여다보는 창문과 같다.
    나는 고흥읍에 위치한 ‘진성식당’이라는 작은 백반집을 찾았다.
    간판은 오래됐고, 메뉴판은 손때가 묻어 있었지만, 그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단골처럼 보이는 어르신들이 식사를 하며 나누는 대화는 무척 평화로웠다.

    반찬은 단순했지만 정갈했다.
    고들빼기김치, 직접 무친 미역줄기, 집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밥상이겠지만, 여행 중 만난 이 따뜻한 한 끼는 오히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혼자 밥을 먹으며 창밖을 바라보던 그 시간은, 이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였다.

     


    5. 고흥에서 나를 다시 만나다

    이번 여행은 화려하지도, 특별한 액티비티가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고흥은 그런 것들이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곳이었다.
    바다와 하늘, 고요함과 단순함이 어우러진 고흥은 내게 ‘쉼’이라는 감정을 선물해줬다.

    애초에 나는 무언가를 보려고 온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내 마음의 방향을 다시 맞춰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흥은 그 역할을 조용히, 그러나 완벽하게 해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일상에 지치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면
    꼭 고흥이 아니더라도 한 번쯤은 사람 없는 여행지를 찾아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처럼 자신을 마주하게 되기를 바란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