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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도 발길도 조용해지는 길 - 포천 백운계곡 폐교 옆 숲길에서
    한국여행의 추억 2025. 10. 30. 20:10

    1. 서론 

    사람 많은 곳을 피해 조용한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봅니다.
    경기도 포천 백운계곡 깊숙한 곳,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숲길 하나가 있습니다.
    폐교가 된 오래된 초등학교 옆, 누구의 안내도 없는 그 길은 목적지보다 과정이 전부인 산책길입니다.
    이름도 없고 사람도 없지만, 그 길 위엔 고요한 위로와 시간의 속도가 천천히 흐릅니다.
    이 글은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만난 풍경과 감정을
    한 사람의 시선으로 담은, 아주 조용한 여행기입니다.


    2. 폐교를 마주했을 때

    백운계곡 중에서도 관광객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상류 쪽으로 오르다 보면
    산 중턱쯤에 허물어진 옛 폐교 한 채가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운동장엔 잡초가 가득했고, 건물 벽은 햇빛에 바래 누렇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추억이 쌓여 있을 그 자리엔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은 버려진 느낌이 아니라 쉬고 있는 공간처럼 보였습니다.

    잠깐 멈춰 서니, 사라진 종소리도 들리는 듯했고,
    교실 창문 너머로는 아직 아이들의 숨결이 맴도는 것 같았습니다.


    3.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폐교 오른편으로 따로 안내판 하나 없는 작은 오솔길이 시작됩니다.
    길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게 아니라, 사람이 다녀서 만들어진 느낌이었습니다.
    풀잎 사이로 낙엽이 얇게 깔려 있었고, 나무들이 서로 가지를 기대어
    햇살을 조심스럽게 걸러 내고 있었습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숲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은 바람이, 가끔은 풀잎이
    내게 아무 말 없이 말을 걸었습니다.

    '잘 왔어. 이런 길이 필요했지?'
    그 말이 꼭 나를 위한 것처럼 들렸습니다.


    4. 길이 나에게 해준 말

    길 위에서는 질문이 없었습니다.
    "왜 여기에 왔는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그런 말은 묻지 않았고,
    대신 조용히 내 옆을 걸어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말 없는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걷는 길은 오히려 목적이 되었습니다.

    햇살 한 조각이 뺨에 스치고,
    나뭇잎이 발끝에 가볍게 인사할 때,
    나는 그 순간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건
    내가 온전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5. 돌아오는 길, 뒤를 돌아봤다

    숲길의 끝은 계곡 물소리가 들려오는 곳에서 마무리됩니다.
    물이 흐르는 소리는 사람의 말보다 더 조용하고, 더 따뜻했습니다.
    돌아서는 길, 나는 걸어온 그 길을 조용히 뒤돌아보았습니다.

    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누구도 반기지 않고, 누구도 막지 않는 그 길은
    다음에 또 오겠다는 나의 마음까지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6. 근처에서 또 하나의 고요를 만나다 – 백운호수

    폐교 옆 숲길에서 내려와 포천 시내 방향으로 10여 분 정도 차를 몰면
    ‘백운호수’라는 또 다른 조용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이곳은 넓은 호수와 둘레길, 그리고 군데군데 놓인 벤치가
    사람보다 자연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공간입니다.

    호수 위로 떠 있는 오리 떼와,
    잔잔하게 퍼지는 바람의 결이 만들어내는 물결을 보며
    조용히 앉아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집니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백운호수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의 완성을 알려주는 장소였습니다.

    호수를 한 바퀴 천천히 걸으면
    어느새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숲길과는 또 다른 결의 조용함이
    이 작은 호수에서 흐르고 있었습니다.


    7. 마치면서 - 조용한 길이 전해주는 것들

    포천의 폐교 옆 숲길은 지도에도, 네비게이션에도 없는 장소였습니다.
    그곳을 걷는 동안, 나는
    이 길이 왜 이름이 없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길은 이름보다는 느낌으로 기억되는 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 만난 백운호수의 풍경은
    조용함이라는 감정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어주었습니다.

    사람이 없는 길,
    소리보다 바람이 먼저 반기는 길,
    자연이 조용히 어깨를 토닥여주는 길.

    그 길에 한 번쯤은 당신도 서보면 좋겠습니다.
    말 없이 위로받고 싶은 날,
    세상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싶은 그 순간에
    이 조용한 길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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