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억새의 바다 위를 걷다 - 정선 민둥산 가을여행한국여행의 추억 2025. 10. 21. 19:33
1. 억새의 계절
가을이 깊어질수록 산은 단풍보다 더 은은한 색으로 물든다.
바로 ‘억새’다.
바람이 불면 은빛 파도가 일렁이고,
햇살이 스치면 그 위로 금빛이 번진다.
정선의 민둥산은 그 억새의 절정을 품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가을이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2. 민둥산, 이름보다 풍성한 산
‘민둥산’이라는 이름은 다소 특이하다.
말 그대로, ‘민둥한 산’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은 아무것도 없는 산이 아니라
억새로 가득 덮인 산이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부터 산 전체가 은빛으로 변한다.
10월이면 능선부터 정상까지 억새가 물결처럼 일렁이고,
햇살 아래선 그 은빛이 황금빛으로 번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억새들이 고개를 숙이며
‘살아 있는 바다’처럼 움직인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면,
누군가 일부러 꾸민 정원보다
자연이 만든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가. 위치 :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일대
나. 높이 : 약 1119m
다. 주요 코스 : 증산역 출발 정상 왕복 약 4.6km (2시간 30분 소요)
3. 억새 사이로 걷는 길, 바람의 소리를 듣다
민둥산은 ‘바람을 듣는 산’이라 불릴 만큼 소리가 특별하다.
억새가 흔들릴 때마다
“사라락 사라락” 하는 잔잔한 울림이 귓가를 스친다.
그 소리는 바람의 숨결 같기도 하고,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하기도 하다.
도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언어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 보면
억새 사이로 하늘빛이 스며들고,
곳곳에 전망대와 포토존이 나타난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아도
눈으로 보는 모든 순간이 이미 엽서 같다.
바람은 머리칼을 흩날리고,
햇살은 억새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앉는다.
그 사이를 걷고 있으면
내가 걷는 건 ‘길’이 아니라,
계절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가. 팁 : 오전 9시 이전 등반 시 안개 낀 억새밭이 환상적입니다.
특히 10월 중순에서 11월 초까지가 절정기예요.
4. 정선의 가을이 특별한 이유
정선의 가을이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연뿐 아니라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민둥산 기슭의 마을엔
지금도 장작불 냄새가 나고,
작은 기차역 주변엔 오래된 간이식당이 그대로 있다.
하산길에 들른 증산역은
‘기찻길 옆 억새 산행지’로 유명하다.
철로 위로 노을이 지고,
기차가 천천히 들어올 때면
억새들이 그 바람을 따라 흔들린다.
그 장면은 마치 오래된 한국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가끔은 여행이 새로운 걸 보기 위한 게 아니라,
잊고 있던 감정을 다시 꺼내는 일이라는 걸
이곳에서 느끼게 된다.
민둥산의 억새밭은 그런 감정을 자연스럽게 꺼내 준다.
5. 주변 여행지
가. 정선 아리랑시장 (현지 먹거리, 토속 간식 추천)
나. 정암사 (천년고찰, 단풍 명소)
다. 함백산/하이원리조트 (드라이브 코스로 연결 가능)
6. 억새가 남긴 여운
산을 내려오면 발끝에 흙먼지가 묻고,
몸에는 바람의 냄새가 남는다.
억새의 향은 오래가지 않지만,
그때 느꼈던 고요함은 마음에 오래 머문다.
도심으로 돌아오는 차 안,
창밖에 스치는 풍경은 이미 달라져 있다.
빽빽한 건물 대신
눈에는 여전히 은빛 억새가 일렁이고,
귀에는 그 바람소리가 남아 있다.
그건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바람처럼 흘러가도, 머물러도 괜찮다는 계절의 목소리다.
“빨리 오르지 않아도 된다.
멈춰 서도, 충분히 아름답다.”
민둥산의 억새는 그렇게 말한다.
7. 여행 정보 요약
가. 위치 :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나. 교통 : 정선 증산역 하차 후 등산로 입구 도보 5분
다. 산행 시간 : 왕복 약 2시간 30분 (완만한 경사)
라. 추천 시기 : 10월 중순에서 11월 초 (억새 절정)
마. 주변 명소 : 아리랑시장, 정암사, 하이원리조트, 정선 5일장
바. 꿀팁 : 정선 억새꽃축제 기간엔 셔틀버스 및 먹거리 장터 운영
8. 여행의 끝에서
민둥산의 억새는 바람과 햇살, 그리고 사람의 기억이 스며든 가을의 언어다.
그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은 매년 이 산을 찾는다.
하루의 걷기, 한 번의 들숨,
그리고 바람 속의 고요함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의 이유가 된다.'한국여행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주 - 바람 따라 걷는 하루 (0) 2025.10.23 겨울이 만든 예술 - 청송 얼음골의 신비로운 하루 (0) 2025.10.22 햇살에 물든 초록의 향기, 보성으로 떠나다 (0) 2025.10.20 바람의 길을 걷다 - 영덕 하루 감성여행 (0) 2025.10.19 남해의 보물 - 보리암 해돋이와 독일마을 감성 여행 (0) 2025.10.18 바다가 품은 계단, 남해 다랭이마을 - 마음이 정갈해지는 언덕 위 풍경 (0) 2025.10.17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 하얀 나무들이 부르는 노래 (0) 2025.10.17 나만 알고 싶은 보석 같은 여행지 - “강릉 안반데기 고랭지 밭”의 사계절 이야기 (0) 2025.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