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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 바다와 숲, 온천이 품은 천천한 쉼의 동네한국여행의 추억 2025. 10. 13. 19:53
1. 시작하는 글
가끔은 멀리 떠나지 않아도 진짜 여행을 만날 수 있습니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어느 가을, 저는 조용한 경북 울진으로 향했습니다.
울진은 동해를 품고 있지만 바다만 있는 곳이 아닙니다. 산과 숲, 계곡, 그리고 온천이 함께 어우러진 천혜의 고장입니다.
이곳에서의 며칠은 그 어떤 화려한 도시보다 풍요로웠고, 제 마음은 조금 느려진 시간 속에서 따뜻하게 숨을 쉬었습니다.
2. 죽변항 - 새벽이 시작되는 항구의 풍경
울진의 여행은 언제나 죽변항에서 시작됩니다.
숙소에 짐을 풀기도 전에 저는 항구로 향했습니다.
새벽 5시, 어둠이 완전히 걷히기 전의 항구에는 생동감이 가득했습니다.
어민들이 바다에서 막 잡아 올린 고기들을 경매장으로 옮기고, 갈매기들은 그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며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죽변항은 ‘어촌 풍경’을 더해 많은곳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항구 끝에 있는 죽변등대전망대에 오르면 탁 트인 동해가 눈앞에 펼쳐지고,
맑은 날엔 멀리까지 이어지는 수평선 위로 햇살이 반짝입니다.
비 오는 날엔 회색 바다와 하얀 파도의 대비가 오히려 더 운치 있게 느껴집니다.
죽변항에서 맞이한 새벽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파도소리가 도시의 소음을 덮어주고, 바다 향기가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씻어주었죠.
그곳에서 처음으로 ‘여행이란 마음을 쉬게 하는 일’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3. 불영사 계곡 - 천년 고찰이 품은 맑은 숨결
바다의 여운을 뒤로하고 산속으로 향했습니다.
울진에서 가장 유명한 산사, 바로 불영사입니다.
불영사는 해석 그대로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가진 사찰로, 천년이 넘는 세월을 멋지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절로 오르는 길은 이미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발끝에서 바스락거리고, 옆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르며 맑은 소리를 냅니다.
불영사 앞마당에 서면 사찰과 산, 계곡이 하나의 풍경처럼 어우러져 마치 오래된 산수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잠시 절 옆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도시의 시간은 빠르고 무겁지만, 이곳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며 마음을 비워줍니다.
아마 이 고요함이 불영사가 천년을 견뎌온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 금강송 숲길 - 천년의 시간과 마주하는 길
울진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바로 금강송 숲입니다.
이곳은 예로부터 궁궐 건축재로 사용되던 최고 품질의 소나무가 자라는 숲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숲 중 하나로 꼽힙니다.
숲길에 들어서면 세상이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높게 뻗은 나무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가지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바닥을 금빛으로 물들입니다.
바람이 불면 솔향이 코끝을 스치며 오래된 나무의 숨결을 전해줍니다.
길을 걷다 보면 ‘왜 이곳이 금강송’이라 불리는지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그 고운 결과 단단한 기운 속에는 수백 년의 인내가 담겨 있습니다.
숲 한가운데 멈춰서서 숨을 고르면,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바람과 새소리만이 남습니다.
그 순간, 저는 문득 '이곳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 백암온천 - 지친 몸을 녹여주는 따뜻한 위로
울진의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백암온천입니다.
백암온천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전통 온천지로, 예로부터 피로 회복과 피부 건강에 좋은 유황천으로 유명합니다.
온천수가 흐르는 노천탕에 몸을 담그자마자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습니다.
차가운 가을 공기와 따뜻한 온천수가 만나며 피로가 녹아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죠.
특히 산속에서 즐기는 노천탕은 자연의 품에 안긴 듯한 편안함을 선사합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하늘은 점점 별빛으로 물들었고,
그 별 아래에서 나는 오랜만에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온천은 단순히 몸을 씻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까지 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6. 울진대게 - 바다의 맛을 그대로 품은 한 끼
울진에 왔다면 꼭 맛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울진대게입니다.
울진대게는 살이 단단하고 달콤한 맛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데,
죽변항이나 후포항 근처 식당에서는 그날 잡은 신선한 대게를 바로 쪄줍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대게를 손으로 찢어 한입 베어 물면,
달콤한 바다 향이 입안 가득 퍼집니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 넣으면 그 맛은 더없이 고소하고 진합니다.
한 끼 식사지만, 그 안에는 바다를 품은 울진의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식당 주인아주머니가 “이건 오늘 새벽에 잡힌 거예요”라며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 웃음 속에는 울진 사람들의 정직한 삶, 그리고 바다를 닮은 너그러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7. 망양정 - 노을 속에서 마무리하는 하루
여행의 마지막 날, 저는 망양정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멀리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을 가진 이곳의 풍경은 이름과 같이 바다가 시원하게 트여 있습니다.
하늘이 붉게 물드는 해질녘, 바다는 노을을 품고 황금빛으로 반짝입니다.
그 순간, 모든 피로와 걱정이 사라지고 오직 감탄만이 남았습니다.
정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여행이란 결국, 내 마음의 안식를 되찾는 일이지 않을까.”
울진은 화려하지 않지만, 그 조용함이 오히려 더 오래 남았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평온함은 아직도 제 일상 속에 작은 안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8. 마무리하며 - 느리게 걷는 용기의 땅, 울진
울진은 그 어떤 관광지보다 진솔한 여행지입니다.
바다와 산, 숲과 온천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사람은 자연스레 ‘천천히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바쁜 일상 속에 잊고 있던 여유, 그리고 조용히 숨 쉬는 시간.
그 모든 것이 울진에 있습니다.
이곳을 떠나는 길, 차창 밖으로 스치는 파도와 산의 모습이
“다시 오라”는 인사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언젠가 또 이 길을 걸을 날이 올 거라 믿으며,
저는 울진이라는 이름을 제 마음속에 조용히 새겨두었습니다.'한국여행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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