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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행의 추억

함양 상림숲 - 천년을 걸어온 숲에서 시간을 멈추다

by good-life-1 2025.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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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가끔은 아무 계획 없이 걷고 싶은 날이 있다. 목적지도, 시간도 정하지 않고 그저 나무 사이를 걸으며 바람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은 그런 날. 경남 함양에는 그런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숲이 있다. 천년을 살아온 나무들이 만든 터널 아래를 걷다 보면, 도심에서 쌓였던 긴장이 천천히 풀어지는 걸 느낀다.
함양 상림숲은 신라시대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관광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이곳의 본질은 '관광'이 아니라 '머무름'이다.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천천히 산책하는 노부부, 카메라를 들고 빛을 담으려는 사진가. 이곳에서는 각자의 속도로 시간을 보낸다.


2. 상림숲, 천년의 역사를 품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 아래 자리한 상림은 신라 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위천강이 범람하여 농토가 피해를 입자, 최치원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홍수를 막고 마을을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숲은 함양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해왔다.
약 21만 제곱미터 규모의 이 숲은 천연기념물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비자나무, 참나무, 느티나무, 갈참나무, 개서어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특히 수백 년 된 거목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한여름에도 숲 안은 서늘하고 그늘이 깊다. 산책로는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걸을 수 있다.
상림숲은 크게 '상림'과 '하림'으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상림이 더 유명하고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상림만 둘러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산책이 된다.

숲
“해당 이미지는 실제 상림숲과 유사한 분위기의 참고 이미지입니다. 직접 촬영한 사진이 아니며, 저작권 걱정 없는 무료 이미지로 제공됩니다.”


3. 천년 숲길을 따라 걷다

상림숲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나뭇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귓가를 채운다. 숲길은 여러 갈래로 이어지지만, 어느 길을 선택해도 결국 하나의 순환로로 연결된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그저 발걸음 가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
숲속 산책로는 흙길과 나무 데크가 적절히 섞여 있다. 운동화를 신고 가볍게 걸어도 좋고, 샌들을 신고 천천히 거닐어도 무리가 없다. 중간중간 벤치가 놓여 있어, 언제든 앉아서 쉴 수 있다. 나는 한 벤치에 앉아 가만히 숲을 바라보았다. 햇빛은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땅 위에 얼룩을 만들고, 멀리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평화로운 소리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다.
걷다 보면 곳곳에서 나무의 나이를 짐작할 수 있는 굵은 줄기들을 마주하게 된다. 손으로 만져보면 세월의 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어떤 나무는 두 사람이 손을 맞잡아도 안을 수 없을 만큼 크고, 어떤 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올라가 있다. 그 나무들이 천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왔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경이로웠다.


4. 숲 안의 문화유적

상림숲 안에는 단순히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걷다 보면 함양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흔적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함양박물관은 숲 입구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작지만 알찬 박물관으로, 함양의 역사와 선비 문화, 지역 유물을 잘 정리해두었다. 상림숲을 방문하기 전에 들러보면 이 지역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학사루는 조선시대 향교 건물로, 숲의 중심부 근처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간단한 휴게 공간으로 활용되며, 건물 앞 마당에서 바라보는 숲의 풍경이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최치원 선생의 사당도 숲 안에 있다. 상림을 조성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작은 사당으로, 조용히 둘러보기 좋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라면 꼭 들러볼 만하다.


5.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숲

상림숲은 계절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봄에는 신록이 터져 나오며 숲 전체가 연둣빛으로 물든다. 새소리가 유난히 활발하고, 꽃이 피어나며 상쾌한 공기가 가득하다. 봄볕이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모습이 아름답다.
여름에는 울창한 나무 그늘이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한다. 더운 날씨에도 숲 안은 시원하고 쾌적하다. 피서지로도 제격이다. 매미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지며, 그 소리조차 여름의 정취로 느껴진다.
가을은 상림숲이 가장 화려해지는 계절이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붉고 노란 잎들이 햇빛에 빛나며 마치 동화 속 풍경처럼 변한다. 낙엽이 쌓인 길을 걷는 기분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좋다.
겨울에는 고요함이 극대화된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이고, 눈이 내리면 설경이 더해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겨울의 상림숲은 고독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된다.
나는 늦가을에 이곳을 찾았다. 노란 은행잎이 바람에 흩날리며 땅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고, 그 위를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멀리서 한 할아버지가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6. 함양 여행의 거점, 상림 주변 명소

상림숲을 중심으로 함양에는 몇 가지 더 둘러볼 만한 곳들이 있다.
함양읍내는 한옥과 전통 가옥이 잘 보존된 정겨운 소도읍이다. 함양시장에서는 지역 특산물인 곶감, 더덕, 산양삼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시장 분위기도 활기차고 정겹다.
개평한옥마을은 상림숲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옥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조용한 한옥길을 거닐며 고즈넉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화림동계곡은 여름철 피서 명소로,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진 절경이다. 상림숲과 함께 여정을 구성하면 함양의 자연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7. 방문 정보 및 여행 팁

주소는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 일대이며, 입장료는 무료다. 상림공원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천천히 산책하며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봄과 가을이 가장 아름답지만 사계절 모두 매력적이다.
평일 오전에 방문하면 사람이 적어 더욱 조용하게 즐길 수 있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멋진 사진이 나온다. 간단한 돗자리를 가져가면 숲 안에서 피크닉도 가능하고, 여름철에는 벌레가 있을 수 있으니 긴팔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근처 함양시장에서 점심 식사를 해결하면 지역 음식도 맛볼 수 있다.


8. 마무리

상림숲은 유명 관광지처럼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다. 하지만 그 조용함 속에 담긴 울림은 어떤 명소보다 깊다. 천년을 이어온 나무들이 만들어낸 그늘 아래에서, 우리는 잠시 멈추고 생각할 수 있다. 빠르게 달려온 일상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리할 수 있다.
함양 상림숲은 그런 곳이다. 누군가에게는 산책길이고, 누군가에게는 사색의 공간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의 장소다. 당신이 어떤 이유로 이곳을 찾든, 상림숲은 묵묵히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다음 주말, 특별한 계획 없이 그저 걷고 싶다면, 함양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천년의 숲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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