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 300년 묵은 고요함 속으로
어떤 장소는 도착하는 순간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 세상의 속도와 무관하게, 그곳만의 시간을 가진 듯한 곳들이 있다. 경북 청송의 주산지가 그런 곳이다.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300년을 살아온 왕버들 나무들이 잔잔한 수면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그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풍경. 바람 한 점 없는 이른 아침이면 하늘과 땅, 나무와 그림자의 경계가 사라진다.
주산지는 조선 경종 원년인 1721년에 만들어진 농업용 저수지다. 아랫마을 농민들의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진 평범한 저수지였지만, 시간이 지나며 물속에서 자라난 왕버들 나무들이 이곳을 특별한 장소로 만들었다.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이 작은 저수지는, 이제 청송을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다.
2003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주산지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미국 AP통신이 소개하고, 2013년에는 명승 제105호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주산지의 진짜 매력은 그런 유명세가 아니라, 그곳에 서 있을 때 느껴지는 깊은 고요함에 있다. 이 글에서는 주산지의 사계절 풍경과 함께, 주변에서 함께 둘러볼 만한 청송의 숨은 명소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주산지는 어떤 곳인가요?
주산지는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에 위치한 작은 저수지다. 주왕산 국립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왕산의 용결응회암층 위에 만들어졌다. 용결응회암은 화산재가 엉겨 붙어 만들어진 암석으로, 치밀하게 붙어 있어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덕분에 주산지는 300년이 넘도록 물을 가득 담고 있을 수 있었다.
이 저수지가 특별한 이유는 물속에서 자라는 왕버들 때문이다. 30여 그루의 왕버들이 수면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왕버들은 물이 많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로, 수령이 대부분 200~300년이 넘는다고 한다. 물속에서 자라면서도 스스로 숨 쉴 수 있도록 진화한 이 나무들은, 사계절 내내 다른 모습으로 주산지를 채운다.
주산지의 면적은 그리 크지 않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천천히 걸으며 나무와 물, 하늘과 산이 만드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는 계곡을 따라 약 0.9km, 도보로 13~20분 정도 걸린다. 길 양쪽으로 울창한 숲이 이어지고,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귀를 씻어준다.
주산지에는 두 개의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제1전망대에서는 왕버들 숲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고, 제2전망대에서는 저수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각각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다르니, 두 곳 모두 둘러보길 권한다. 전망대 주변에는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앉아서 쉬어가기에도 좋다.
3. 주산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가. 새벽 물안개 사진 촬영
주산지를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이른 새벽에 방문하길 권한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새벽 물안개를 촬영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밤사이 차가워진 공기와 따뜻한 물이 만나 피어오르는 안개가 왕버들을 감싸면, 주산지는 신비로운 별세계로 변한다. 안개 사이로 천천히 떠오르는 해를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소음이 사라진 듯한 고요함을 느낄 수 있다.
새벽 촬영을 위해서는 날씨를 잘 확인해야 한다. 밤과 낮의 일교차가 큰 가을이나 이른 봄에 물안개가 가장 아름답게 핀다.
나. 산책로 걷기
주산지로 가는 길 자체가 하나의 힐링 코스다.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 이어지는 약 1km의 산책로는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다. 길 양쪽으로 신록이 우거지고, 발밑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곳곳에 마련된 자연 해설판을 읽으며 걷다 보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자연의 세밀한 부분들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산책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걸을 수 있을 만큼 평탄하게 조성되어 있다. 가파른 오르막이 거의 없어 어린아이와 함께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 다만 여름철에는 햇볕을 피할 곳이 많지 않으니, 모자나 양산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걷기 힘든 경우에는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마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다. 사계절 다른 풍경 감상
주산지는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봄에는 연둣빛 새싹이 돋아나며 생명력 넘치는 풍경을 만들고, 여름에는 짙은 초록이 수면을 덮는다. 가을이면 단풍이 물들어 저수지 전체가 붉고 노란 빛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눈 덮인 왕버들과 얼어붙은 저수지가 고요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을 단풍철에 주산지를 찾지만, 개인적으로는 초록이 가득한 여름의 주산지도 추천한다. 관광객이 적어 한적하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어가기에 좋다. 겨울 설경도 장관이지만, 추위가 매서우니 단단히 준비하고 방문해야 한다.
4. 주산지 여행 실용 정보
가. 위치 및 교통
1) 주소 :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73
2) 주차 : 주산지 입구 주차장 이용 (무료)
3) 대중교통 : 청송에서 주왕산 방면 버스 이용 후 하차, 다만 배차 간격이 길어 자차나 택시 이용 권장
나. 운영 시간 및 요금
1) 운영시간 : 연중무휴, 24시간 개방
2) 입장료 : 무료
3) 새벽 방문 가능(사진 촬영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새벽 5~6시에 방문)
다. 주의사항
1)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여 반려동물 출입 금지
2) 자전거 출입 금지
3) 드론 촬영 금지
4) 흡연 금지 (위반 시 과태료 부과)
5) 새벽 방문 시 방한복 필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질 수 있음)
라. 방문 추천 시기
1) 물안개 촬영 : 9월~11월 새벽 (일교차가 큰 날)
2) 단풍 : 10월 중순~11월 초
3) 신록 : 5월~6월
4) 설경 : 12월~2월 (추위 주의)
마. 소요 시간
1) 주차장에서 주산지까지 왕복: 30~40분
2) 주산지 둘레 산책: 30~40분
3) 사진 촬영 포함 총 소요 시간: 1~2시간
5. 주산지 주변 여행지
가.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주왕산 국립공원이 있다. 주왕산은 웅장하지는 않지만 기암절벽과 깊은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이다. 대전사를 지나 용추폭포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왕복 3~4시간 정도 소요되며, 급한 오르막이 적어 가벼운 등산을 즐기기에 좋다.
주왕산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7개의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병풍바위다. 화산재가 쌓이고 세월이 깎아 만든 이 기암들은 주왕산을 대표하는 경관이다. 가을 단풍철이면 붉게 물든 단풍과 기암이 어우러져 더욱 장관을 이룬다.
1) 위치 :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2) 입장료 : 어른 3,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500원
3) 주차비 : 대형 5,000원, 소형 3,000원
4) 추천 코스 : 대전사 → 용추폭포 → 주왕굴 (왕복 3~4시간)
나. 송소고택
조선시대 양반가옥인 송소고택은 주산지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 99칸 규모의 이 고택은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실제로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기도 하다. 고택 뒤편의 소나무 숲은 특히 아름다워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다.
송소고택에서는 한옥 숙박 체험도 가능하다. 전통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옛 정취를 느껴보고 싶다면 미리 예약하는 것이 좋다. 고택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주왕산의 풍경도 일품이다.
1) 위치 :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소고택길 15-2
2) 입장료 : 무료 (숙박체험은 유료)
3) 전화 : 054-874-6556
다. 백석탄
주왕산 인근에 위치한 백석탄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에 등재된 명소다. 계곡 바닥 전체가 하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물이 말랐을 때 새하얀 물결무늬를 볼 수 있다. 물이 흐를 때는 맑은 계곡물과 하얀 바위가 어우러져 청량한 풍경을 만든다.
백석탄은 주왕산 등산 코스 중간에 위치해 있어, 주왕산을 오르다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여름철에는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기도 한다.
1) 위치 :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왕산 등산로 내)
2) 입장료 : 주왕산 국립공원 입장료와 동일
3) 추천 방문 시기 : 5월~9월 (물이 흐를 때)
라. 달기약수터
청송에는 유명한 약수터가 여러 곳 있는데, 그중 달기약수터가 가장 유명하다. 탄산이 들어 있어 톡 쏘는 맛이 나는 이 약수는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약수터 주변에는 산책로와 휴게시설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다.
달기약수터 근처에는 여러 식당과 펜션들이 있어 식사나 숙박을 해결하기에도 편리하다. 특히 청송 사과로 만든 사과막걸리는 꼭 한번 맛볼 만하다.
1) 위치 : 경북 청송군 현동면 월매길
2) 입장료 : 무료
3) 주차 : 공영주차장 이용 (무료)
마. 절골계곡
주왕산 대전사에서 가메봉을 넘어 이어지는 절골계곡은 주왕산의 숨은 명소다. 깊은 계곡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진 이곳은 사람의 발길이 비교적 적어 한적한 산행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가을 단풍철이면 계곡 전체가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장관을 이룬다. 등산 코스가 다소 길고 험한 편이니, 체력과 시간을 충분히 고려하여 방문해야 한다.
1) 위치 :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주산지리
2) 문의 : 054-873-0019
3) 난이도 : 중상 (등산 경험자 추천)
6. 청송 여행 팁
가. 청송 특산물
청송은 사과로 유명한 고장이다.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은 사과가 생산되는데, 가을철에 방문한다면 길거리에서 파는 사과를 꼭 사보길 권한다. 청송 사과로 만든 사과막걸리와 사과주도 특산품이다.
나. 숙박
청송읍에 모텔과 펜션들이 여러 곳 있다. 주왕산 입구에도 민박과 펜션이 많아 숙박하기 편리하다. 송소고택에서 한옥 숙박을 하거나, 주왕산 근처 캠핑장에서 캠핑을 즐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다. 여행 코스 추천
1) 당일 코스 : 주산지 (새벽) → 주왕산 등산 → 송소고택
2) 1박 2일 : 첫째 날 (주산지 → 주왕산 → 달기약수터), 둘째 날 (송소고택 → 백석탄 → 청송 전통시장)
3) 사진 촬영 코스 : 주산지 (새벽) → 백석탄 → 절골계곡 (단풍철)
7. 마치며 - 느린 시간이 흐르는 곳
주산지는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하는' 곳이 아니다. 그저 천천히 걷고, 나무를 바라보고, 물에 비친 그림자를 보며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멈춰 서고 싶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자연 속에 머물고 싶을 때 찾아가면 좋다.
300년 동안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왕버들처럼, 우리도 가끔은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고 천천히 숨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산지는 그런 시간을 허락해주는 곳이다. 도시의 소음과 속도에 지쳤다면, 주산지의 고요함 속으로 잠시 들어가보길 권한다. 그곳에서 당신만의 느린 시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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